> 온라인스쿨 > Articles

조회수 25
카테고리 칼럼
제목 너는 누구와 먹고 마시느냐?

(누가5:30) 너는 누구와 먹고 마시느냐?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5:30)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함께 먹고 마시는 기쁨은 인생의 희락을 누리는 복 중에 하나다. 함께 생활하는 혈육이 없는 나로서는 나와 함께 먹고 마시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만약 이들이 없다면 나는 혼자라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죄인과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들과 동류가 된다는 의미이다. 복음의 수장이 된 사도 베드로 역시, 안디옥 교회에서 동일한 짓을 하여 바울에게 면전에서 책망을 받았다. 그런데 예수께서 죄인으로 정평된 마태를 제자로 부르신 것도 모자라 그의 초대를 받아 죄인들과 함께 식사 파티를 여신 것이다. 이에 유대인들이 일어나 어찌하여 죄인과 함께 먹느냐고 항의를 한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가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다 답하셨다. 이는 죄성을 가진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원론적인 가치기준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각 사람의 삶의 외형적 가치에 따라 사람을 판단한다. 이러한 상황은 종교적으로 더욱 심각하다.

 

나는 젊은시절 동성애자로 살아 갈 동안 누구에게도 제재를 받지 않았다. 오직 불의한 양심에 눌려 잘못된 인생에 대하여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 기준에 의하여 나를 대하였으나 내가 부를 누리고 있는 이상 그들은 나의 인격을 침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천신만고 끝에 탈동성애를 한 후 나의 인격은 종교적 기준에서 아픔을 겪어야했다.

 

차라리 세상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에 대하여 상당히 관대하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생각하고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선의의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용서와 사랑의 표본인 교회들이 동성애자에 대한 심각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요즘은 윤락여인을 창녀라 부르지 못하고 범죄자도 인격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데, 거룩한 하나님의 의인이라는 사람들이 동성애자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창조적 섭리를 대적하는 지옥의 자식들.. 항문섹스로 에이즈를 옮기는 매개체.. 가정을 파괴하는 패역한 무리들.. 정말 그리스도인으로써 하지 못할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이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그들은 처음부터 의인으로 태어난 사람인 것 같은 생각마져든다. 어쩌면 그들은 용서함을 받은 죄인임을 스스로 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은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5:26,27) 기록하였다. 이는 모든 인간의 주권이 오직 생명의 주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동성애자들의 퀴어축제가 서울광장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바로 그 한쪽에서는 동성애자의 인권을 요구하는 축제가 그 바로 옆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연합의 국민대회가 개최된다. 또한 우리 탈동성애 전도축제도 같은 날 청계광장에서 펼쳐진다. 해마다 이 전쟁을 치루며 나는 왜 이것을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럼에도 육체를 넘어설 나이에 선 나의 믿음의 확신은 나는 죽는 날까지 이 아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생각뿐이다. 주께서 내게 주신 이 아이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며 지지고 볶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하여 저들의 인생이 복되지 않을까 싶다. 주님 내게 은혜를 더하소서. 내가 저들과 이대로 살아 갈 것입니다. (이요나 목사)

첨부파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