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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깜짝 쑈”

“하나님의 깜짝 쑈”

 

(사 64:4)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로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이 내용은 고린도전서 2장 9절과 매우 유사하다. 거기서 바울은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바울은 여기에 “오직 하나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다”는 말을 덧붙였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이 말씀을 번역한 것이라 생각한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이사야는 이 말씀의 대상들을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하였지만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기에 바울은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라고 첨가하였다.  차이점이 하나가 더 있다면 ‘행한 일’(worked)로 사용된 히브리어 ‘마련하다’(prepare)를 바울은 ‘준비가 되다’(prepared)라는 뜻의 헬라어를 사용하였다. 따라서 이사야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증거하였고,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바울은 “오직 하나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다”라고 추가했을 뿐이다.

 

흥미롭게도 바울의 번역 내용에는 하늘에 속한 내용들이 많이 언급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하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바울이 이처럼 구약의 말씀을 번역하는데 추가를 해야만 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받았을 때 그 당시 사람들 중 하나님이 계획하고 계신 대속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아마 오늘날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휴거의 이야기나 칠년 대환난 그리고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이나 하늘의 도성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하듯이 그들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앞으로 태어날 아들의 영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영으로 이사야는 이 아들이 사람들에게 경멸을 받고 거부될 것과 그의 죽음으로 그가 우리의 죄를 담당할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증거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 중에 이 메시지 이해할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싶다.

 

그러면 오늘날 사람들은 어떠한가?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평화와 기쁨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가 알고 있는 지혜에 무지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고 말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세상 사람들이야 그렇다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바울을 비롯한 선지자들이 증거한 하늘에 속한 내용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복음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전달된 지 2000년에 이른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온전한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다 증거한 것이다. 이는 육체적인 영역을 초월한 세상의 일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상상의 세계는 인간에게 주신 영광스러운 선물이다. 우리는 어린이 놀이 속에서 명확히 보게 되는데 아이들이 놀이 중 대표적인 것은 자기들이 무엇인체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예쁜 드레스를 입으며 옛날 큰 성에 사는 아름다운 공주가 되어 보기도 하고 신랑 신부가 되어 결혼식을 올려도 보고 또 어떤 때는 칼을 든 용감한 해적이 되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공주가 어떤 것인지 부부가 어떤 것인지 해적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내가 어렸을 때 아이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성장한 지금 나는 어린이의 행동을 버렸다”라고 말한 것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인생의 삶은 실제이며, 삶은 열심히 살아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고 삶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생각할 때 어떤 면에서 어렸을 때의 환상을 벗어버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모두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아이 때의 그대로의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바보라고 부른다.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상상의 세계를 살고 있는 지 항상 싱글벙글 웃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얼마전 스스로 작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리켜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이라고 부른다.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영정 속 사진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다. 어쩌면 그는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 던진 노랑 고무풍선을 보고 웃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노랑풍선은 얼마 오르지 못하고 터질 뿐이다. 그의 해맑은 웃음은 그렇게 노랑풍선과 함께 사그러져 버렸다. 노랑색은 생명이 있을 때 그 빛이 곱다. 생명을 잃으면 그 싹은 노랗게 바랄 뿐이다.

 

당신은 하나님이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당신을 위해 하나님이 하시기를 원하는 것들에 대해 당신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성령의 계시가 필요하다. 인간의 지혜로는 창조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들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에베소서 사람들에게 지혜와 명철의 영을 임하기를 기도했다. 그 지혜를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과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 가를 알 수 있다.

 

오늘 이사야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누구를 위해 일하시는가?” 묻고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답하였고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답하였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행하실 것을 믿고 오랫동안 기다렸다.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도 그들 자신이 스스로 해 보려고 할 때마다 모두 실패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들로 우리의 계획에 하나님이 동의하시도록 종용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우리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다. 그분은 그분의 뜻대로 일하신다. 다만 그의 미리하신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성령 안에 펼쳐지는 미래의 세례를 바라보며 묵묵히 나아가는 자들 속에서 하나님의 환상은 실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니라”(히11:1) 기록한 것이다.

 

더 이상 인간의 깜짝 쑈같은 것은 필요없다. 그들의 목적은 노랑풍선을 들고 있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기막힌 상술일 뿐이다. 그들의 깜짝 쑈는 어린 때의 일과 같아서 기억 속의 망상으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환상은 깜짝 쑈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행하실 일들을 수천년 동안에 걸쳐 조금씩 힌트를 주시면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따라 오도록 기록해 놓으셨다.

 

우리가 그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다면 약속하신 그날에 우리는 하나님의 깜짝 쇼를 보게 될 것이다. 계시록 21장을 보라! 달만한 크기의 입방면체의 성곽은 제스퍼(Jasper)와 같은 보석과 골드로 되었고 그 기초석은 열두 보석으로 꾸며졌으며 우리가 통과할 열두 문마다 어마어마하게 큰 하나의 진주로 장식되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사람의 지혜로 생각해 보지도 못할 깜짝 쑈를 준비해 놓으신 것이다. (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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